책쓰기 칼럼

1인1책 김준호 대표가 말하는 책쓰기, 출판

출판기획의 ‘고구마 줄기론’

작성자
김 준호
작성일
2014-11-03 17:50
조회
542
강원도 인제군 한 시골 마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집이 농사는 짓지 않았지만 농부의 농사짓는 모습을 어렴풋이 보아왔다. 강원도에서는 고구마와 감자가 주요 식단 재료였는데 고구마를 좋아한 기억이 난다.
한번은 고구마 밭을 지나다가 고구마 줄기를 잡아당기니 고구마가 줄줄이 딸려 나와서 어린나이에 무척 당황했다.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농사를 망치는 몹쓸 짓이 된 것을 보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멘붕’에 빠졌던 것인데 지금은 웃지만 당시엔 어쩔줄 몰라했다.
고구마 줄기를 당기면 여러개의 고구마가 주렁주렁 딸려 나오듯이 하나의 기획이나 저자와의 인연이 출발점이 되어 무수한 다른 기획과 저자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필자는 이것을출판기획판 ‘고구마 줄기론’으로 명명하고 싶다.
필자의 사무실 오른쪽 벽면에는 책꽂이가 있는데 필자가 기획한 책들이 가지런히 꼽혀 있다. 이 책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해보면 한 권 마다 책을 기획하고 진행한 사연이 있고, 한 권의 책이 시발이 돼 다른 책과 저자로 이어져 갔다.
2007년 말에 기획 출간한 <학원 발가벗기기>(조진표 외 9인 지음/와이즈멘토)란 책이 있다. 사교육의 폐해를 짚고 사교육비 절감이란 기획의도로 시작한 이 책은 10명의 교육전문가가 공동저자로 참여 했다.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화두를 갖고 이야기하면서 저자와 만나고, 전화, 이메일을 하면서 각각의 저자가 갖고 있는 콘텐츠나 성향을 많이 파악했다.
10명의 저자가 참여하는 기획 진행이 번거롭기는 했다. 그렇지만 책을 함께 만들면서 기획적인 면에서 스킨십을 자주하니 저자를 이해 할 수 있는 꺼리가 종종 생겼다.
책이 나온 후 10명의 저자중 6명의 저자와 각각 단독으로 책을 진행했으니 60% 이상의 저자들을 필자의 인맥군으로 확보한 셈이다. 이 저자들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함께 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시작으로 주변으로 파생되어 필자의 든든한 저자밭이 된 것이다.
명진출판에서 나온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신웅진 저)도 대표적인 고구마 줄기론을 대입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반기문 총장을 롤모델로 제시한 청소년 교양도서인 <바보처럼 공부하고,,,,,,>는 폭발적인 독자들의 반응에 힘입어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로 발전해 나갔다. 뒤이어 <오바마 이야기> <스티브잡스 이야기> <워렌버핏 이야기>등 연속적인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가 나왔다.
뜨인돌 출판사의 <신나는 노빈손>시리즈도 하나의 고구마 줄기를 당겨서 시작된 기획이다. 한 과학잡지에 나온 기획기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한 콘셉트의 청소년 대상 탐험소설이을 기획 했다.
만화가 이우일 작가와 여러명의 스토리작가가 함께 작업한 이 책은 테마별 시리즈까지 수십권이나 등장해 뜨인돌 출판사의 대표기획 상품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쯤되면 고구마 한 줄기가 아니라 한 권의 기획 아이디어가 고구마 밭을 만든 경우라 볼 수 있다.

‘고구마 줄기론’의 결과를 보면 참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결과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일부 출판인들의 태도를 보면 ‘고구마 줄기’의 결과에만 상당히 집착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과정을 보자는 얘기다.
출판기획판 고구마 줄기는 고구마 씨앗인 한 권의 책에서 출발한다. 한 권의 책에서 탄탄한 콘텐츠가 뒷받침돼야 고구마 줄기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일부 출판사에서는 한 권의 고구마 씨앗을 뿌리는 과정을 등한시 한채 결과만 추종한다. 한 기획서가 있다. 출판사에서 기획서를 보니 의미있고 가능성은 있지만 시장에서 확실한 판매 예상을 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보자. 이 기획을 채택해야 하는가.
고구마 줄기론을 기획에서 도입하겠다는 기획편집자나 출판사에서는 과감하게 이러한 모험적인 기획에도 도전하고 투자해야 한다. 확실한 판매책만 따지는 자세는 고구마 줄기를 캐려는 접근이 아니다.
만일 한 장의 기획서에서 고구마 씨앗에 비유할 수 있는 메리트를 발견한다면 과감하게 출판을 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당장은 이문이 남지 않는 장사라 할지라도 후속작을 바라보면서 투자하는 자세, 그것이 고구마 씨앗을 알아보는 기획자의 안목이라고 본다.
필자가 만난 고구마 줄기를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출판사로 도모북스의 손현욱 대표를 꼽고 싶다. 영화 마케팅 회사의 대표이기도 한 손대표는 동물 수의사가 쓴 동물 에세이 <아름다운 선물>(백연 지음/도모북스)을 진행하면서 처음 만났다. 사실 판매 사이즈가 크다고 볼 수는 없는 이 책을 신생 출판사인 도모북스에서는 과감하게 출판을 결정했다. 비록 이 책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대신 조선시대 공녀 이야기를 다룬 <화려한 경계>(조정현 지음/도모북스)와 인간 노무현을 조명한, 대통령을 다룬 최초의 웹툰인 <노공이산>(이건 글 박운음 만화/도모북스) 그리고 <리니지>게임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딸들>(신일숙 원작, 이유진 글/도모북스) 등 서정의 ‘작품 몰아주기’ 보답을 받아 연이은 행진을 하고 있다.
기획편집자라면 ‘고구마 줄기론’을 활용해라. 과감하게 도전하고 투자하는 마인드와 함께해야 고구마 풍년으로 겨울밤 따뜻한 고구마를 실컷 먹을 것이다.

2014.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