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조 작가와 함께하는 공간

이동조

이동조는 창의교육그룹 아이디어코리아 대표입니다. 25년 경력의 기자로 작가, 기획자, 공모전코칭전문가로 활동하며 15년간 공모전 각 분야의 수상작 수천 편을 분석해 누구나 쉽게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창의방정식’을 창안해 뉴스메이커 선정 ‘창의교육부문 한국을 이끄는 혁신가’ 상을 수상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창의성 강사로 ‘창의방정식 생각교과서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전국 초·중·고생과 대학생, 교수, 기업인, 공무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1000회 이상 단숨에 창의인재가 되는 ‘창의방정식’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수백 개 기업과 정부기관의 공모전을 기획·컨설팅해 왔고, 다양한 공모전의 심사위원과 KBS EBS, 한국경제TV, 한국직업방송 등 각종 방송과 미디어에서 강연자와 아이디어코치로 참여했습니다.

저서로는 <창의방정식의 비밀>, <인공지능시대 창의성 비밀코드>, <내 운명을 바꿀 2억짜리 공모전전략>, <대한민국 20대 공모전에 미쳐라>, <꿈끼꾀끈깡꼴꾼:감칠맛전략>, <생각천재연구 믹스 MIX>, <펜으로 세상을 움직여라>, <히든카드>, <나도 공모전에 대상탈거야>, <스티브잡스의 창의성을 훔쳐라>, <1일 1독서의 힘> 등이 있습니다.

이동조 작가 방

[칼럼]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지혜

작성자
동조 이
작성일
2017-09-09 17:52
조회
174


* 이 칼럼은 삼성 사내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누구나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추억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

여든이 넘도록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난 지 몇 해가 흘렀다. 백발에도 경운기 운전은 물론 수천 평 논 흙 고르기에다, 40킬로그램 이상 나가는 쌀 포대를 가볍게 짊어지시던 천생 농사꾼이셨다.



그러던 당신은 어느 순간 뇌졸중으로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들과 찾아가던 고향 길은 어느새 1년에 한두 번으로 줄었다. 초중고를 모두 다닌 작은 시골 고향마을 풍경은 시나브로 아련해 졌지만 그럴수록 아버지와의 추억은 오히려 더 생생해진다.



그 때 ‘그 사건’을 겪은 후부터 나는 어떤 난관을 만났을 때 ‘전진으로 돌파할까? 후진으로 벗어날까’를 늘 생각하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늘 하나밖에 없는 듯 막막한 인생의 문제에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나의 편견이었고 고정관념이었다. 문은 앞문도 있고 뒷문도 있다. 그게 아버지께서 나에게 몸소 보여주며 남긴 소중한 유산이다.



‘그 사건’ 중 첫 번 째 이야기는 경운기 사고에서 시작한다.



"아버지, 뛰어내려요!”

난 아버지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때 아버지는 경운기를 운전 중이셨다. 짐칸에 나를 태운 경운기는 지금 막 경사가 매우 심한 내리막 커브 길을 내려가는 참. 경운기는 순간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길과 논사이의 도랑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이미 상황을 돌이키기엔 늦었다는 걸 직감했다.



경운기를 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지금 버리지 않으면 아버지가 위험해 질 것이다. 길과 도랑사이의 높이는 3미터 남짓. 깊은 낭떠러지는 아니었지만 행여나 경운기가 뒤집히거나 운전 손잡이에 충격을 당한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빨리 뛰어 내려요!”

나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경운기의 머리 체는 이미 논 사이 도랑으로 처박히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제야 땅위로 잽싸게 뛰어내렸다. 뒤쪽 짐칸에 타고 있던 나도 급히 길바닥으로 내려섰다. 주인 없는 경운기는 구렁이가 구멍 속으로 내려가듯 스르르 미끄러져 도랑 속으로 온 몸을 집어넣었다.



‘탈탈탈-’



엔진소리는 요란했고 네 바퀴는 제자리에서 허탈하게 돌고 있었다.



경운기 운전법은 일반 자동차와 좀 다르다. 특히 내리막길 운전은 엄청난 스킬과 내공이 필요하다. 경운기는 동력이 있는 머리채와 무동력의 짐칸이 연결된 개미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베테랑 농부라도 내리막 길 운전에선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평지 길이라면 오른쪽으로 방향전환을 할 때 오른 손잡이와 연결된 동력을 끊어야 한다. 반대로 좌측으로 이동할 때는 좌측 손잡이와 연결된 동력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내리막길에선 작동법이 완전히 반대다. 무동력의 뒤쪽 짐칸 무게가 머리 동력체를 압박하는 힘이 전달되어 평지에서와는 다른 반대 동력을 끊어야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

평길이냐, 내리막길이냐, 짐칸에 짐이 많이 실렸느냐, 적게 실렸느냐에 따라 브레이크나 방향전환법이 제각각 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경사가 급한 커브 내리막길이라면 경사도나 짐칸의 짐무게까지 고려해 오직 고도의 감각만으로 순간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내리막길에 커브가 있는 어려운 코스를 만났을 때 '아차' 하는 순간 인명사고까지 날 수 있는 게 바로 이 경운기다.



내리막 커브 길을 내려오던 주인 잃은 경운기는 결국 3미터 높이의 도랑에 머리를 처박고 헛바퀴만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벌써 시골 농촌 들 가엔 저녁노을이 퍼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면 어둠이 밀려올 것이다. 밤이 되기 전 경운기를 끄집어 낼 아이디어를 빨리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떻게 한다?’

나는 경운기를 끄집어낼 아이디어를 빨리 떠올리려 머리를 짜냈다.

첫째. 마을로 가서 경운기 한 대를 빌려와 밧줄로 연결해 뒤에서 당겨낸다.

둘째. 지나가는 트럭을 잡아 밧줄로 연결 뒤로 당겨서 끄집어낸다.

셋째. 크레인 작업차를 불러 경운기를 끄집어내고 사용료를 지불한다.

경운기를 잡아당겨 다시 길 위로 끌어올리는 방법이 가장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도랑에 빠진 경운기를 길로 당겨 올린다는 생각은 나에겐 너무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그때 물끄러미 경운기를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나에게 손짓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형한테 전화해서 삽 두 자루만 가져오라고 해라.”

“네? 삽이요?”

나는 영문을 몰라 다시 아버지에게 다시 되물었다.



“삽으로 어떻게 이 경운기를 끄집어내시게요? 곧 밤이 될 텐데 그냥 크레인을 불러 끌어당기게 빠르지 않을까요?”



아버지의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마지못해 핸드폰을 꾹꾹 눌렀다. 그러나 삽 두 자루로 이 상황을 해결할 멋진 그림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얼마 후 형이 도착하자 아버지는 삽 끝으로 팔 자리를 푹 찍어 표시했다. 그곳은 바로 경운기 머리채가 처박혀 있는 도랑의 반대쪽 둑이었다. 1미터 정도 되는 넓이의 둑은 논과 연결돼 있었다. 형과 나는 아버지가 표시한 논둑에 삽질을 시작했다. 10여분 정도 흙을 파내니 경운기 머리를 감싸던 둑이 완전히 제거 됐다.



도랑과 논이 연결되자 경운기는 아주 쉽게 전진하며 논 한가운데로 빠져 나왔다.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문제가 해결됐다.



“와, 이거 너무 간단하잖아!”

금세 논바닥 한가운데 들어선 경운기를 보고 난 후 아버지의 말씀.

"파놓은 논둑은 다시 튼튼하게 쌓아야지!"



둑은 다시 쌓여 이내 도랑과 논을 분리하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아버지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뒤로 끌어당기지 않고 그냥 앞으로 전진시키는 방법도 있었군요.”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시 고향 집을 찾았을 때 두 번째 ‘사건’이 벌어졌다. 시골집 대문 앞 도랑에 그만 자동차 뒷바퀴 하나가 빠지고 말았다. 후진을 하다가 그만 풀덤불 속에 가려져 있던 1미터가량 열린 도랑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뒷바퀴 하나가 도랑에 완전히 빠지자 차는 옴짝달싹도 못했다.



‘어떻게 하지?’

이번에도 나는 차를 빨리 꺼낼 가장 합리적인 아이디어를 찾기 시작했다.

첫째, 뒷바퀴 앞부분에 돌을 쌓아올려 공회전하는 바퀴가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둘째, 경운기를 차체와 연결하여 앞에서 끌어당긴다.

셋째, 경운기로도 차를 꺼내지 못하면 대형 크레인 작업차를 불러 자동차를 당겨 끄집어내고 사용료를 지불한다.

첫 번째 방법은 바퀴축이 도랑 난간에 걸려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차곡차곡 돌을 쌓아도 바퀴에 힘이 전달되지 않았다. 실패였다.



곧 두 번째 방법을 써보았다. 경운기를 끌고 와 차체와 연결해 당겨보았다. 한쪽 바퀴의 힘을 완전히 상실한 차체를 경운기로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마저도 실패. 결국 남은 것은 세 번째 방법이었다.

“아버지, 차바퀴가 대문 옆 도랑에 빠졌는데 꼼짝을 않네요. 혹시 차를 끌어낼 크레인 전화번호 있어요?”



아버지께서 직접 나와 차의 상태를 살폈다. 뒷바퀴를 빠진 상황을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

“뒤로 빼!”

나는 이번에도 감을 잡지 못한 채 다시 아버지에게 되물었다.

“예? 뒤로요?”



그 때서야 비로소 나는 차가 후진으로 도랑을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제야 무릎을 탁 쳤다.

“아, 그렇게 한 번 해보면 되겠네.”



도랑은 경사가 있었고 턱에 뒷바퀴가 걸려있었다. 당연히 자동차를 전진시키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후진이라면 낮아지는 경사도를 따라 바퀴의 힘이 가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넓고 두꺼운 철판지를 하나 가져와 빠져있는 바퀴의 뒤쪽에 밀어 넣고 도랑 밖으로 걸쳐놓았다.

차에 시동을 걸어 후진기어를 놓고 천천히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꿈쩍도 않던 차는 불과 2초 만에 도랑을 빠져나왔다.



나도 모르게 ‘야호’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또다시 너무 싱겁게 일이 해결됐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번엔 전진이 아니라 후진이잖아.”

이쯤 되니 아버지의 코치가 단순히 우연이라 무시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 또 한 수 배운 것이다. 그때 문득 통찰 하나가 내 머리를 스쳤다.



‘아, 인생이란 정말 앞문도 있고 뒷문도 있는 거군.’



인생을 살아가며 나는 사전에 정해 둔 목표를 위해 혹은 정해진 시간에 쫓겨 나름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하나만의 길’을 고집스럽게 선택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 어느새 그런 습관이 몸에 깊숙이 배어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정관념’이란 결국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관성의 법칙처럼 우리는 가던 길로 혹은 가던 방향으로 고집스럽게 가려는 경향이 결국 생각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로 인지심리학 교수 조던 피터슨은 이런 인간 사고의 오류 작동방식을 하나의 ‘방’에 비유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방에는 무수히 많은 정보가 있다. 하지만 방에 들어와 그 정보를 처리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자신의 목적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것들,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미지의 영역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조던 교수의 말은, 있는 그대로의 ‘전체 정보’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의 정보’로만 인지하고 생각을 처리하는 게 고정관념이라는 의미다.



인간은 보통 자신의 목적과 직접 관계가 있거나 있다고 믿는 일부의 정보를 그냥 완전한 정보라고 ‘믿기로’ 한다. 그것이 생각의 오류에 빠지게 하고 결국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세계적인 기업 ‘아마존’의 포스투에어 책임자 스캇 루스필드는 『심플렉서티』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는데, 중요한 깨달음을 던져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문가라 생각하고 어떤 유형이나 경향들을 추정해 내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은 대개 틀립니다.”



이를테면, 어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자기의 관점’은 대개 틀리니 일단 배제해 놓고 판단해 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이건 이것 때문이야’라고 해왔던 첫 번째 떠오른 좋은 생각을 ‘이건 이것 때문이 아닐 수도 있어’라며 무조건 거부해 보는 식이다.



나의 ‘합리적인’ 생각은 보나마나 일단 틀렸으니 다시 생각보자. 그게 창의적으로 살고 싶은 나만의 생각노하우다.



창의성은 '나(인간)'의 시각과 생각을 버리고 '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고는 자신의 목적 여부와 관계없이 방에 있는 그대로의 전체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창의성이란 바로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이나 환상을 버리고, 모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이다.



사실 막무가내 머리를 쥐어짠다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건 아니다. 아이디어는 사건이 일어나는 패턴 속에 이미 존재하고 우린 그것을 발견해 낼 뿐이다.



아이디어는 우리 손아귀에서 찾아내야 하는 게 아니고 창고 안에 이미 수북이 쌓여있다. 아이디어란 ‘창고 주머니 → 아이디어 트럭 → 아이디어 수레 → 아이디어 가방→ 아이디어 지갑’을 거쳐 우리에게 온다.



내 관점으로 보면 내가 갈 길은 오직 앞 쪽 한 방향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무대의 관점에서 보면 방향은 사방 360°이고 그러니 이미 360개의 솔루션과 아이디어가 존재한다.

우린 그 중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최적의 아이디어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창고를 발견하는 것이 창의의 본질이다.



“앞으로 갈까? 뒤로 갈까?” 독단과 독선에 빠지지 말고 고정관념에 벗어나 때론 후진도 때론 전진도 생각해 본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풀 해결책은 다양한 방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 발 물러서면 우리가 서 있는 무대가 보인다. 내 관점이 아니라 그 무대의 관점으로 보면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



아버지는 평생 우리 형제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말로 표현하지 않으셨다. 80여년 세월을 농부로 지내며 그저 자식들 옆에서 함께 계셨고 지혜를 몸소 실천하셨다. 아버지는 우리 인생 앞에 놓인 무수한 미션에 여러 가지 답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삶으로 가르쳐 주신 거다. *

글 이동조 창의교육그룹 아이디어코리아 대표 (‘창의방정식’ 창안, 창의성 강사, 창의방정식의 비밀, 꿈끼꾀근깡꼴꾼-감칠맛전략, 창의인재 믹스(mix), 펜으로 세상을 움직여라. 스티브잡스의 창의성을 훔쳐라 등 저자)
전체 0